2020. 9. 21. 23:01ㆍ영화
정말 화려하게 조졌다. 다름이 아니라 정말 화려하기는 한 영화다. 디즈니라는 빅 스튜디오의 영화답게 [뮬란]은 확실히 인상적인 미술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재밌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것이지, 멋진 배경과 의상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거다. [뮬란]은 재미가 없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뮬란]의 러닝타임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1시간 28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깔끔한 스토리와 쾌감을 간결하게 전달한다(그것이 원작 애니메이션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명작'이라고 불리지 않는 요소가 된다는 점은 빼놓고). 그런데 이 영화, 무려 1시간 55분이나 한다. 사실 이 자체로 비판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 나름 실사화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작년 개봉작 [알라딘]은 무려 40분 정도나 러닝타임이 늘어났음에도 그런 성적을 거뒀으니,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추가된 러닝타임에 무엇을 넣었냐가 되겠다.
[뮬란]이 정말 재밌는 것은 러닝타임은 추가되었으나 정작 이야기의 밀도 자체는 낮아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원작의 훈련 뮤지컬 장면과 이 영화의 훈련 장면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확연해진다. 원작 훈련 장면의 경우엔 오합지졸이던 군인(주로 조연 3인방)들이 능숙한 군인으로 변해가는 성장 스토리, 뮬란이 노력을 통해 여자로서의 신체 조건을 극복하는 성장 스토리, 거기에다 뮬란이 결국 군인들에게 마음을 열며 조연 3인방과의 유대감을 쌓을 계기까지 5분이란 시간 안에 뮤지컬로 흥미롭게 연출했다. 반면 이 영화에는 원작의 그 무엇도 들어있지 않다. 뮬란이 뭔가 노력해 성장을 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마저도 "기"라는 지극히 선천적인 설정으로 인해 후반부로 가면 무의미해지는 장면이 된다.
또한 이 영화에는 이야기에 활력을 부어줄 조연 캐릭터들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원작은 무슈, 귀뚤이, 조연 3인방이 이야기를 환기시키고 유쾌함을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하며 영화 전체의 밸런스를 조정한다. 이 영화는 스포트라이트가 시종일관 뮬란을 향해서만 비춰진다. 그 때문에 영화는 안 그래도 진부한 스토리에 분위기까지 진부해지며 그렇다고 뮬란의 내면묘사가 세심하지도 흥미를 돋구지도 않는 덕에-이는 원작에서 내면묘사로 요긴하게 쓰인 뮤지컬의 부재가 크지 않나 싶다.-이 영화는 사실상 관객에게, 그리고 특히 원작을 본 관객에겐 지루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악당 묘사는 더욱 더 심각하다. 되도 않는 여성 연대 서사를 위해 등장한 마녀 캐릭터에 의해 칸 장군은 존재감이 옅어질 뿐더러 초반에 몇 마디 씨부리는 것 빼고는 등장조차 하지 않기에 관객은 긴장감이 상실된 클라이맥스 장면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원작의 그 눈사태에서 살아나오는 포스의 악당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밖에 남지 않는 각색이다. 하물며, 도대체 마녀의 캐릭터는 왜 넣었으며, 왜 그렇게 쓴 것인가? 뮬란의 페르소나 겸 안티태제의 캐릭터로 설정한 것은 알겠다. 다만 앞부분에서 강조되던 강함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최후와 그 최후가 주인공에게 아무런 감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캐릭터의 존재의의는 어떻게 봐야 할까?
그나마 칭찬 받는 액션도 평균 수준에 머문 채 그다지 인상적인 쾌감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원작의 페미니즘 요소 또한 "기"라는 설정 때문에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원작의 명대사인 "핑과 뮬란이 뭐가 다르죠?"을 변주한 대사는 오히려 원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계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말 재밌는 것은 이 영화의 각본 담당이 무려 4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 4명 중 한 명도 각본의 완성도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정말 4명 중 한 명도 영화를 작위적이게 만들고 편리하게 사용되어 보이는 불사조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단 말인가? 디즈니의 이 성의 없어 보이는 실사화 프로젝트는 디즈니에 대한 불신까지 느끼게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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