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7. 02:03ㆍ영화
갱스터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권선징악이라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주류로 여겨지던 이야기 구조를 타파해왔다는 것에 있다. 갱스터 영화 속 세계에서 착하다는 것은 가장 빨리 죽기 싶다는 말에 속하며, 비열하다는 것은 곧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속한다. 승리라는 단어도 갱스터 세계에선 덧없을 뿐이다. 살아남은 것이 곧 승리며, 강함의 증거이다. 흔히들 말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은 그 무엇보다 갱스터 영화에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의 기운으로 덮여 있는 세계를 속된 말로 '간지나게' 표현한 갱스터 영화의 매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또한 그토록 냉정한 세계 속에서 배신, 의리와 가족애를 표현하기에 그 소재들이 더 빛나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의리와 가족애 같은 것들도 갱스터 세계 안에선 하나의 농담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은 거의 모든 갱스터 영화의 안티태제로서 관객들에게 현실에 대한 재인식을 시켜주며 또 다른 명작 갱스터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좋은 친구들]은 그 모든 갱스터 영화에 대한 비웃음이라면, [아이리시맨]은 그 모든 갱스터 영화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자, 성찰의 영화라고 느껴졌다. 많이들 표현하는 갱스터 영화의 완결편이라는 수식어가 이 영화에 붙은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길고 지루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뭘까? 아까 말했듯, 갱스터 영화의 기본 전제는 우선 선과 악 구분없이 비열한 인간들의 치열한 생존 혈투이다. 그리고 다시 말해서, 갱스터 영화에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으로 표현된다. [아이리시맨]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남은 끝엔 도대체 뭐가 남는가?"
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것은 프랭크의 노년기를 묘사하는 후반부와 실존인물들의 죽음을 나타내는 집요한 자막이다. 영화의 시점에서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라도 그들이 이미 갱스터 세계의 일원인 것과, 총과 칼로 맞이하는 죽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점은 끝끝내 영화의 최후반부까지 살아남은 프랭크의 인생이 어떻게 보이냐는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은 것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후반부 20분의 시간 동안 그의 인생에서 남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직 먼저 떠난 자들이 떠넘기듯 남긴 죄악감과 죄책감 뿐이다. 그의 삶은 후회 그 자체로 정의되었다.
사실 이 영화에도 의리와 가족애가 등장하기는 한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랭크의 의리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프랭크 손에 직접 파괴되었다고, 그런 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가족과 그를 멀어지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 소중한 것들과 멀어지게 만드는 곳, 그곳이 바로 갱스터 세계의 민낯이다.
영화는 [대부]의 타락한 알 파치노와 부인의 시선이 교차되다 문이 닫히는 엔딩과 조응하듯 요양원에서 홀로 남은 주인공을 열린 문틈으로 비추며 끝이 난다. 삶의 종착지에 있는 그의 심정을 감히 우리가 추측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영화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을 마주할 뿐이다. “이 아일랜드 사람의 인생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을까?” 갱스터 영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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