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 왜 하필 박쥐일까?

2020. 6. 28. 23:53연출, 스토리

오늘 극장에서 [배트맨 비긴즈]를 봤습니다. 3번째 감상이자 극장에선 첫 관람이 되겠네요. 이 영화의 첫 감상은 막 영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조그마한 폰으로 감상해서 그런지 솔직히 그다지 큰 감흥은 받지 못했죠. 두 번째 감상은 작년이었는데, 이땐 현재의 날 말해주는 건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라는 대사에 눈길이 갔던 것 같습니다. 마침 고민하고 있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한 마디라서 더욱 더 인상이 깊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휴대폰, 두 번째는 노트북, 세 번째는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보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점점 감상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재밌지만, 더 재밌는 것은 볼 때마다 영화에서 집중하게 되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감상에서 제가 집중한 왜 하필 박쥐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글의 주제 되겠습니다. 사실 전 이 주제에 대해 이번 감상 전까지는 어릴 적에 동굴에 빠졌을 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하게 인식하고 있었어요. 다만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하는 법. 앞의 두 번 감상에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극장에서 보니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되더군요.

 

 

 

사실 위에서 말한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문제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냐는 거죠. 그리고 그 중심엔 그가 정의의 사도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 부모님의 사망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밤, 그는 오페라를 보며 동굴에서의 박쥐가 연상돼 부모님에게 빨리 나가자고 보채고, 그렇게 중간에 빠져나가는 도중 그의 부모님은 피살 되죠. 박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 그런 죄의식에 그는 빠지게 되고, 그 죄의식은 곧 분노로 변합니다. 그리고 분노는 곧 복수로 변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복수가 다른 이에게 뺏기고 레이첼의 일침으로 인해 그는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나를 가장 원망하는 사람과 똑같게 만들 수 있다는 걸요. 아마 그가 박쥐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런 곳에서 오는 것도 있을 겁니다. 나를 망가뜨릴 수 있는 분노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의 근본엔 박쥐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상징으로 박쥐를 선택합니다. 두려움의 상징으로 남기 위해, 자신이 두려움의 상징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면서 말이죠. 여기서 또 집중할만한 점은 왜 하필 두려움의 상징이냔 것입니다. 그는 복수에 실패하고 고담시의 밑바닥 계급을 눈으로 보고선 직접 하층민의 생활을 체험하며 선과 악을 과연 인간이 구분하고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이는 이 영화의 메인 빌런인 라스 알 굴의 철학과 대조되는데, 라스 알 굴은 자경단을 스스로 지칭하며 악인들을 스스로 규정하고 처형하려고 하죠. 물론 악인들은 죗값을 받아 마땅한 인간들일 것입니다. 다만 그들을 죽이는 것은 그가 깨달았듯, 그 악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브루스 웨인이 선택한 것이 두려움입니다.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두려움앞에서는 멋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두려움의 상징이 되기로 선택한 이유입니다.

 

저는 이것이 [배트맨 비긴즈]를 포함한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대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슈퍼파워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히어로는 어떤 히어로인가? [배트맨 비긴즈]는 이에 대한 아주 세련되고 재밌는 대답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