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그 어떤 것도 아닌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영화

2020. 5. 22. 15:59영화

'더 폴'은 영화의 거의 모든 면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훌륭하다. 시나리오는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는 이야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스토리이며 미술과 미장센은 그야말로 현대 미술 그 자체다. 다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에 관한 영화다. 모든 것은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미학으로 기능한다. 미술과 미장센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결합되어 더욱 빛난다. 시나리오 또한 '이야기'에 관한 훌륭한 스토리이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곧 '영화'로도 치환될 수 있으니 '영화'에 관한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다시 풀어서 말하자면 이 영화의 미술은 영화로 표현됐기에 아름다웠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영화로서 풀어졌기에 그만큼의 감동을 줬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필자도 이 영화의 여운을 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잔말말고 직접 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나는 영화가 말하는 바를 어림짐작할때 가장 중요하게 영화의 제목을 본다. 영화의 모든 것을 몇몇 단어로 줄인 액기스 같은 영화의 정체성이 영화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우선 한국 개봉명의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빼고 보자. 

 

the fall. 말그대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다만 떨어진다는 뜻에 주목하지 말고 the fall이란 영어명에 집중해보자. 그것은 물리적인 추락을 뜻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떨어졌다는 은유적인 의미도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경우엔, 이 추락이란 개념이 여러 번 나온다.

 

우선 실질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과일을 따다가 나무에 떨어져 영화의 배경인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로이 또한 영화 스턴트 일을 하다가 다리에 떨어져 하반신 마비에 이르게 된다. 또한 로이는 엎친데 겹친 격으로 사랑하던 여자치구까지 자신이 스턴트하는 배역의 남자 주인공 배우에게 뺏겨 정신적 추락까지 겪게 된다. 

 

그런 로이는 말 그대로 모든 희망을 잃고 추락하게 된다. 작중 대화를 들어보면 그에겐 마땅한 가족마저 없어 보인다. 영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추락한 인생, 희망 없이 살게 된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만나게 된다.

 

이때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약을 훔치게끔 하려고 이야기를 지어 해주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로이가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대충 멋지게 보이게끔 꾸며 캐릭터로 만들고 원망하는 사람을 악당으로 삼아서 만든 뻔한 서사시이다.

로이에겐 그저 애 하나 놀아주기 위한 소꿉놀이 정도의 놀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소녀인 알렉산드리아는 진심으로 이야기에 몰입한다. 작중 알렉산드리아의 대사에서 나오듯이 로이의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 또한 된 것이다.

 

사실 이 때 로이의 이야기라 함은, 로이의 삶이나 마찬가지인 표현이다. 그런 그에게 알렉산드리아가 던지는 이 이야기가 자기 것도 된다는 말은 즉 그의 인생이 더 이상 그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되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다루는 스턴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배우 뒤에 가려지는 그림자 같은 직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턴트맨에게 보내는 함성과 위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보잘 것 없는 스턴트맨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우리가 영화 같은 창작물에 몰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만큼은 멋진 주인공에게 몰입해 권선징악의 쾌감을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현실을 그렇게 초라하게 보지 말았으면 한다. 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알렉산드리아 같은 작은 희망이라도 당신의 인생에 불을 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영화의 훌륭한 점은 그런 현실의 아름다움을 직접 스크린에 담았다는 것이다.  cg 없이 오직 지구에 존재하는 곳만을 직접 찍어 화면에 담은 그 열정은 현실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영화의 설득에 절로 넘어가게 만든다. 왜 나는 여태 눈을 닫고 살아왔는가. 현실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많은데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무수한 스턴트 배우들의 몽타주 장면은 현실의 경이로움을 몸소 증명시켜줬던 그들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 싶다. 더불어 현재도 열심히 스턴트 액션들을 찍고 있는 스턴트맨들에게도 보내는 위로 메세지일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무비 매직'이었다는 점이다. 그 어떤 것도 아닌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영화. 글의 마지막 정도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되겠지. 

 

그냥 가서 봐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인생 영화 4편  (0) 2020.06.06
미스틱 리버-우리가 권선징악에 열광하는 이유  (0) 2020.06.04
2020.05.26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0) 2020.05.27
2020-05-14 보이후드  (0) 2020.05.14
2020.05.09-카사블랑카  (0)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