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13)
-
아이리시맨-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갱스터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권선징악이라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주류로 여겨지던 이야기 구조를 타파해왔다는 것에 있다. 갱스터 영화 속 세계에서 착하다는 것은 가장 빨리 죽기 싶다는 말에 속하며, 비열하다는 것은 곧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속한다. 승리라는 단어도 갱스터 세계에선 덧없을 뿐이다. 살아남은 것이 곧 승리며, 강함의 증거이다. 흔히들 말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은 그 무엇보다 갱스터 영화에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의 기운으로 덮여 있는 세계를 속된 말로 '간지나게' 표현한 갱스터 영화의 매력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또한 그토록 냉정한 세계 속에서 배신, 의리와 가족애를 표현하기에 그 소재들이 더 빛나는..
2020.06.17 -
나의 인생 영화 4편
사람들에게 취미가 영화 감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나면 항상 일종의 정해진 약속 같이 들어오는 질문이 있다. "인생 영화가 뭔가요 그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질문이 진정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 가혹한 질문이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어찌보면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라는 질문보다 더 가혹할 수도, 영화 감상이 취미랍시고 영화를 두 편만 봤을리 없으니까. 무엇보다 세상에 그런걸 확실히 정해놓고 사는 사람은 웬만한 씨네필이 아니고서야 드물다. 다만 이 질문은 가혹하긴 해도, 완전히 무쓸모한 질문이 아님은 틀림없다. 어떤 영화가 나에게 제일 소중한지 떠올리려면 필연적으로 내가 영화와 거쳐왔던 기억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만약 정말로 영화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이터널 선샤..
2020.06.06 -
미스틱 리버-우리가 권선징악에 열광하는 이유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향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장 어두운 걸작'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나는 이에 백번 동의한다. 사실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기보단 그의 작품들의 정반대에 서있는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는 항상 '인간'에 대해 다뤄온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 인간들은 때론 미련하고 천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 노장은 영화의 마지막만큼은 줄곧 인간에 대한 희망을 외치곤 했다. 다만 이 영화, 미스틱 리버는 어떨까. 앞서 이 영화가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들과 정반대에 서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영화의 화법은 여전히 건조하게 전하려는 바를 확실히 전하는 클래식한 연출 그대로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보통 각본을 쓰지 않는다. 그런 그가 하필 왜 이런 인간에 ..
2020.06.04 -
2020.05.26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우선 이 영화에 대해 말하려면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 사실을 언급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글에선 오직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점을 먼저 참고해주셨으면 한다. 사실 이 영화가 나의 첫번째 홍상수 영화다. 익히 사람들이 홍상수 영화를 표현하는 말과 같이 확실히 나에게도 홍상수의 영화는 신세계에 가까웠다. 다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며 뒤통수를 탁 잡게 하는 그런 신세계보단 조금 피로한 신세계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감상평인 것 같다. 말했듯이 이 영화는 나에게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피로하게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가끔은 감당 못할 정도로 다가오는 초현실주의 기법 때문 아닐까 싶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영화가 시작한지 3분만에 난 느꼈다. 그리고..
2020.05.27 -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그 어떤 것도 아닌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영화
'더 폴'은 영화의 거의 모든 면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훌륭하다. 시나리오는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는 이야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스토리이며 미술과 미장센은 그야말로 현대 미술 그 자체다. 다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에 관한 영화다. 모든 것은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미학으로 기능한다. 미술과 미장센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결합되어 더욱 빛난다. 시나리오 또한 '이야기'에 관한 훌륭한 스토리이지만 '이야기'라는 것은 곧 '영화'로도 치환될 수 있으니 '영화'에 관한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다시 풀어서 말하자면 이 영화의 미술은 영화로 표현됐기에 아름다웠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영화로서 풀어졌기에 그만큼의 감동을 줬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필자도 이 영화의..
2020.05.22 -
2020-05-14 보이후드
가끔 어떤 영화들은, 그 영화에 대해 감상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그 영화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감히 나 따위가...’하면서 그저 조용히 곱씹고 남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영화. 이 영화가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게 나도 자세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감상을 정리해서 대변해놓았다. 이용철 평론가의 네이버 한줄 평은 그런 내 감상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 어떤 상찬도 방해가 될 뿐이다. 그냥 보기를 권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 평은 아까 말한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내 감상을 대변하는 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 단언컨대 한줄 평 한정으로, 이 영화를 가장 완벽하게 정리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2020.05.14